인도에서 감사절 전날 터지기 시작했던 뭄바이 테러 사건은 발생 사흘 만에 인도의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진압됐다고 한다. 인도의 최대 인구가 밀집돼 있는 뭄바이에서 특히 많은 외국인들이 체류하고 있던 최고급 호텔과 보수 유대교 회당등을 폭탄과 총으로 공격하면서 시작된 이 테러 사건은 테로리스트를 포함해서 150여명의 민간인과 외국인이 피살되었다고 한다. 특수부대원들은 테로리스트를 모두 사살함으로써 진압을 마쳤다고 하는데, 사상자들이 늘어난 [...]
“지도자에게서 필요한 근본이나 젊은이들 혹은 배움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필요한 근본이나 사실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을 갖추라’는 같은 덕목이다. 아무리 좋은 학력이나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어도, 그리고 아무리 막강한 재력과 인맥과 수완을 갖추고 있어도, 가슴 깊이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는 사람은 바른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바른 제자가 될 [...]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이해 방식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제의적 신앙관은 현대인에게 더이상 의미가 없다. 반면에 뒤의 이해는 우리가 이 성서포럼에서 추구하려는 신앙이해의 단초들을 담고 있다. 이 세상은 악하고 보잘 것 없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만드신 거룩한 곳이고 귀한 곳이기에 지켜야하고 가꾸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세계관과 우주관을 담고 있다.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존재로서 창조성을 존재의 본질로 삼고 있다는 이해, 그리고 원죄에 매여사는 노예적인 인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책임적으로 결단하고 만들어가야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자유의지론적인 이해는 신앙이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창조적이고 책임적이게 만드는 것임을 새롭게하지 않는가!”
매일 아침 아이와 남편이 나가고 제일 먼저 하는게 있다.
커피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여는거다. 미국내, 호주, 이태리, 한국등등에 있는 친구와 친지들에게 들어온 소식을 읽는것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현곡님의 뒤늦은(ㅋㅋ) 답장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다. User아이디를 받고 알려주신대로 들어와 보았다.
이렇게 펼쳐진 장에서 함께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수 있다는것이 참으로 기분좋고 기대된다. 늘 같은것 같지만 조금만 뒤돌아 [...]
한겨레 신문 11월 24일자 인터넷 판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은 심정이 든다. 성서에 보면 사람들이 소리지르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눅19:40)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말을 오히려 거꾸로 읽어야 하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들이 소리를 지르니까 경제가 무너지고 남북관계가 무너지며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정녕 과장된 것일까?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이제 겨우 두주가 지났을 뿐인데 그동안이 마치 서너 달 쯤 지난 것처럼 까마득하다. 그동안 오바마는 직접 정치일선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내각을 비롯한 각처 인선과정이 드러나면서 그가 나가려고 하는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오바마라는 인물도 대단한 내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오바마를 뽑을 수 있었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진화과정 또한 놀랍다. [...]
조광동 (시카고 라디오코리아대표이사, 전한겨레신문미국지사장)
2008년 11월 4일은 미국 역사가 오래 기억할 날이 될 것입니다. 열광과 환호의 감격은 시카고 그랜트 팍과 사람들 가슴에서 떠나겠지만, 2008년 11월 4일의 의미는 미국 역사에서 오래 기록될 것입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미국 역사가 새롭게 쓰이는 것이고, 미래의 미국 역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노예의 후손이 미국의 백악관 주인이 되는 엄청난 역사의 도약이 [...]
“효제(孝弟)는 더이상 유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랫사람이 웃사람 섬기는 일로 해석해서는 웃기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주장했다가는 오히려 효제를 이야기하는 모든 유가의 서물 자체가 구닥다리 쓰레기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다. 왜냐? 지금은 철저한 평등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철저히 이뤄지지는 않았다 해도 평등이라는 것은 적어도 현대국가가 출현한 이후 현대인의 의식을 이루는 중요한 전제 가운데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효제는 [...]
“이제 우리는 논어라는 서물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되게 임해 보자. 항상 대충 되는대로 좋은 말만 들어보자는 식으로 대하면 논어는 그냥 지루한 ‘옛날책’에 불과할 것이지만, 마음을 되잡고 정성을 기울여 한문장 한문장씩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음에 이르는 때가 있을 것이다.”
토요성서포럼(가칭)을 시작한지 달포가 됐다. 사실 목요인문학당을 하면서 주로 동서양 철학을 다뤄왔기에 기독교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체적으로 성경을 어떻게 인문학적으로 읽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항상 아쉬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회원의 요청으로 드디어 성서연구 모임을 갖게 됐고, 비록 적은 인원이지만 재미있어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본래 목사인 내가 성서연구 모임이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어쩐 일이었을까?
성서연구 첫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