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마르크스가 꿈꿨던 세상

by 황기용 on January 31, 2010 · 0 comments

in e-인문학

이번 주 동양고전 시간에는 도반들의 비판적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사자소학에 나오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교훈과 논어 공야장에서 공자가 거론한 백이 숙제 고사 때문이었죠.

고전 속에 묻힌 보석 찾기

지금 나이든 세대들이 어린 시절에 어른들께 많이 듣던 훈계 있잖아요. 이거 하지 말아라, 저거 하지 말아라, 앉을 때에 몸을 기대지 말고 입으로는 잡담하지 말고 손으로는 장난하지 마라. 큰 소리로 웃지 말고 부모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마라….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얘길 하면, 이 무슨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린가 할거고, 부모들도 자기 아이들을 그런 틀 속에 가두기 싫어할 테죠.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얘기를 굳이 읽어야 하냐는 회의론까지 제기됐습니다.

백이, 숙제 얘기도 그래요. 은나라의 마지막 폭군 주왕을 타도하러 가는 주나라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제후국이 천자를 친다는 건 어진 일이 아니라고 만류하는 백이와 숙제는 역사상 수없이 되풀이되는 절개와 지조를 지킨 의로운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죠.

사마천은 사기에서 백이와 숙제처럼 선한 사람이 굶어죽을 수 밖에 없었으니 하늘이 과연 선한 사람 편인가 한탄하면서, 그나마 공자의 입을 통해 후세에 길이 이름을 남겼으니 다행이라는 코멘트를 남깁니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 역시 우리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얘기죠. 그 어떤 대의명분보다 내 목숨, 내 가족의 행복을 우위에 두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개인의 생명, 가족의 안위가 중요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지만, 지금처럼 드러내놓고 가치의 중심에 두지는 않았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을 읽다보면 선뜻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이해했던 방식이 우리의 감각과 달랐기 때문이죠. 세계관이 다르니 시대를 보는 문제의식이 다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가치관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래도 우리가 고전을 붙잡는 이유는 인류가 추구해온 보편적 가치가 고스란히 묻혀있는 광맥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속에서 보석을 캐내려면 문화적인 차이라는 상대성의 문제, 시대적 배경이라는 상황성의 문제를 파들어가는 품을 좀 팔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악자위동, 예자위이(樂者爲同, 禮者爲異)”라 해서 음악은 하나됨을 위한 것이고, 예는 차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동즉상친, 이즉상경(同卽相親, 異卽相敬). 하나가 되면 친하게 되고, 차이가 나면 공경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유교의 예나 인, 의라는 가치는 봉건적 신분질서가 확고하던 시대에 인간관계의 근거를 공경에 둔 사회를 이루어 보려는 노력의 산물이었죠. 비록 사람 사이에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하다는 구분이 존재하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 신뢰, 사랑을 전제로 한 세상을 지향하고자 했던 강렬한 열망이 있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끊임없이 제기해온 보편적인 물음이 있다면, 그건 인간다운 삶에 대한 추구가 아닐까요? 어떤 세상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일까, 어떤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일까, 고민하고 싸우고 허물고 다시 세워 온 수천 년의 기록이 고전 속에 녹아 있고, 그 투쟁이 역사로 이어져 온 것이죠.   

칼 마르크스의 고민과 업적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봐요. 마르크스가 최종적으로 지향했던 건 당대의 기형적이고 병적인 사회구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문제, 인간다운 삶을 상실한 채 자신에게서조차 소외된 인간을 구원하는 문제 외에 다른 게 아니었죠. 무척이나 많은 오해의 소지를 후세에 남긴 방대한 과학적 분석과 치밀한 작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에 불과했던 거죠.   

철학자 가운데 칼 마르크스만큼 비판의 표적이 되고 또 숭배의 대상이 된 사람도 흔치 않을 겁니다. 철학자들이 세상을 이러쿵 저러쿵 해석해 왔지만, 중요한 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라고 선언한 마르크스는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한 세기동안 세상을 뿌리까지 뒤흔들며 변화시켜 놓았죠.  

저도 젊은 시절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으면서 벼락을 맞은 듯 온 몸이 전율에 휩싸이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곤 생각했죠. 기독교의 핵심 가치와 본질은 마르크스의 사상 속에 구현되어 있고, 칼 마르크스는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챤이라고 말이죠.

마르크스의 사상은 저마다 아전인수격으로 현실세계에 적용, 실험하면서 크게 왜곡되었고, 기어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꿈꿨던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비판적으로 묻는 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더불어 아무리 폭군이어도 하극상은 용납할 수 없다며 기존질서를 맹종했던 백이와 숙제, 또 그들을 의롭다고 칭송한 공자의 보수적 입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 또한 필요합니다. 공자의 사상은 주왕실이라는 과거를 이상사회의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격을 띌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주나라 예법을 근간으로 인문중심의 휴머니즘으로 꽃피웠고, 인류문명에 기준을 주는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고전과 역사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고, 나갈 방향을 진지하게 묻게 하는 힘이 되지만, 어떤 세상을 만드느냐는 결국 우리자신과 우리시대의 몫으로 남습니다.

{ 0 comments… add one now }

Leave a Comment

You can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